외국어 공부 기록 5개국어 열정을 쏟는 것, 전자 필기를 안 하는 이유

살다 보면 그냥 목적 없이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방향성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게 좋다고 하니까 따라 하고, 저게 또 좋다고 하니 저것 또 따라 하고 그렇게 남 따라 하다가 어느새 나이는 점점 들게 된다. 그렇게 더 이상 나에게는 열정이라는 단어가 사라진다. 성취도 없고, 점점 좀비화되어 간다.

5개국어나 되는 외국어 공부를 하며 적은 기록들을 보면, 큰 의자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새롭게 이 세상에 아직 없는 것들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매우 큰 열정이 필요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미스터리한 일들을 너무 겪어서 초자연 현상을 믿는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람이 어떠한 물건에 사람의 엄청난 에너지 즉 의지, 피땀 흘린 노력이 담기게 되면 귀신을 쫓아 낼 수 있다고 말이다.

우리는 그러한 물건들이 매우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든 에르메스 가방, 스위스 장인 시계공이 한 조각 한 조각 노력해서 만든 롤렉스 시계, 괴테 하우스에 있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집필한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책상,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살렉산드르 푸시킨의 펜, ‘레미제라블’ 빅토르 위고의 원고. ‘모나리자’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천문학 적인 가치를 가질 때도 있다.

실제로 괴테의 집에 가서 그의 책상을 본 적이 있다. 잉크 얼룩이 덕지 덕지 붙어 있다. 기운을 받고 싶어서 살짝 몰래 살짝 손을 데었다. 매우 조심스럽게 말이다. 그렇다 요즘이라면 전자동 스탠드 책상을 쓰는데 잉크에 온갖 얼룩이 져있는 그것을 중고로 이름을 가리고 올리면 아무도 안 살 것이다. 그런데 그 값어치는 매우 크다. 그 사람의 혼이 닮 겨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외국어 공부를 할 때 전자필기를 선호하지 않는다. 거의 안 쓴다. 나는 원래 중학생 때부터 뼛속까지 얼리어답터였다. 그래서 최신 기기들을 늘 가지고 있었음에도 전자필기는 지양한다. 그래서 책들, 공책들을 다 항상 가지고 다닌다. 지금처럼 엄청 크고 좋은 가방들이 발달하기 전, 7년 전만 하더라도, 가방이 내가 가지고 다니는 책, 공책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2달이 지나면 끊어졌다. 우리 교수님은 그것을 매우 좋아하셨다. 항상 가방끈이 끊어질 때쯤 나에게 아빠 미소를 지으시며 “가방 바꿔야겠네 ㅎ”라고 하셨다. 진심 길 가다가 끊어져서 보따리 마냥 들고 집에 들어갈 때는 너무 힘들었다.

요즘 시대가 어떤 때인데, 외국어 공부를 하는데 전자필기를 안 해? 할 수도 있다. 처음 대학생이 되고, 생물학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다. 1학년 때 2,3학년 공부를 할 정도였다. 그 과정에서 노트하나에 내가 먼저 예습해서 배운 것들을 요약해서 적어 나갔다. 그리고 노트 하나가 완성이 되었다. 내 별명이 “히든 캐릭터”(게임에서 숨어있는 캐릭터, 특정 커맨드를 입력하면 나오고, 매우 세서 양민 학살에 이용되는 캐릭터, 뛰어나다는 뜻)였다.

내 노트에도 별명이 붙었다. ‘히든 노트’ 그 공책 한 권만 있으면 어딜 가던 안심이 들고 든든했다. 이런 노트가 있으면 정말 든든하다. 그냥 책을 베껴 필기한 게 아니라 내가 창작해서 만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

그래 일반 공책은 전자 필기와 달리 분실의 우려도 크다. 나도 이 노트를 한 번 분실한 적이 있다. 이때 온 캠퍼스를 머리에 꽃 꽂은 미친 사람처럼 돌아다니며 찾아다녔다. 다행히 한 강의실에서 청소하시는 분이 그 공책을 버리지 않고 교탁 안에 넣어 두셨다. 찾자마자 바로 끓어 앉고 주저앉았다. 마치 잃어버린 자식을 찾은 것처럼.

5개국어 외국어 공부를 하면서도 전자필기를 시도해 봤으나 이런 열정이 담기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다. 틀리면 그냥 지우개 버튼을 눌러서 쓱 지우고 다시 쓰면 된다. 노트에 필기를 할 때는 한자 한자 정성스럽게 틀리지 않으려 집중한다. 그리고 틀리면 집중을 외치며 더 깊이 있게 빠져든다. 그리고 한 페이지가 완성이 된다. 나의 열정이 눈으로 가시화된다. 반면 전자필기는 그냥 내 휴대폰 속 사진과 같다. 애정이 그다지 없다. 묵혀 둔다. 그리고 잘 꺼내서 안 보게 된다. 편이성이 있지만 그게 유일성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그냥 내가 필기한 것을 메일로도 보내고, 클라우드에도 보내고 친구에게도 보내고, 외장 하드에도 복사할 수 있다. 이렇게 복사본들이 불어나기 시작하면, 유일성의 가치가 훼손되면서 언제든 다 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꺼내서 안 보게 되는 것이다. 단일 외국어가 아닌 3개~5개국어를 공부할 때는 애정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