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러시아어, 중국어 오픽 점수 IM2를 들고 정말 쌩뚱 맞은 나라로 갔다. 독일이다. 내 의식의 흐름이 독일어를 들어 본적도 독일에 아는 지인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독일로 그렇게 돈 몇 십만원 싸가지고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가면 어떻게든 해결 될꺼야 라는 믿음 하나로 훌쩍 떠나 버린건지 아직도 의문이다.
내가 나를 축측 해보자면 우선 전공이 자연을 다루는 학문이다 보니 광학기기나 그외 각종 실험기기가 “마데 인 저머니~”가 참 많았다. 그것도 독일에서 가지고 오는 실험 기구들은 전부다 고가 였다. 그럼에도 독일이라는 국가 자체가 그렇게 나에게 좋은 이미지는 아니였다. 항상 영화에서 독일이 나오면 우중충 하고 우울증 걸리가 정말 딱 좋은 날씨로만 비춰 졌기 때문이다.
그냥 해외에서 한번 살아 보고 싶었다.
외국어를 하면 할 수록 겁이 없어진다.
외국어는 하면 할 수록 그냥 나라 밖을 나가는 자체가 겁이 없어진다. 친구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 하셨다. “넌 사막 한가운데 떨어져도 어떻게든 잘 살거다.” 이런 이유가 그냥 외국어를 알고 있으니 가서 도움을 청하던 어떻게 든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떨어 졌다.
독일어 인사도 모르고 독일 가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그렇게 도착한 독일 프랑크푸르트 그리고 비행기에서 내리는데 앞에 서있던 보안 담당자 분이 나를 보더니 독일에 어떤 사유로 왔냐고 물었다. 이건 대한항공에서 나중에 일하게 되면서 알게된 사실인데 가끔 공항에서 랜덤으로 지정을 해서 보안요원들을 게이트로 보내서 이사람이 독일 입국이 가능한 사람인지 체크를 하는게 있다. 별거 없다. 비자가 있으면 비자가 있는지, 무비자 입국시 무비자 입국 가능 국 사람인지, 본인 여권이 맞는지만 체크 한다.
그렇게 그 보안요원과 마주 했다. 그러자 나더러 얼굴을 보자 마자 내 여권도 안보고 바로 영어로 “프랑크푸르트에 온 걸 환영해요. 워킹홀리데이?”라고 하시더라. 너무나 환한 미소로 맞이해 주셨다. 그냥 환한 미소로. 처음 방문한 외국인으로써 너무 고맙다. 첫 인상을 바꿔 주셨다. 그렇게 입국한 독일.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까?
소 뒷걸음 치다 쥐 잡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절대 불가능! 나를 흥분 시키다.
사람들이 말한다. 절대 불가능 하다! 이런 말을 들으면 나는 그 말을 듣는게 아니고 내가 이 절대 불가능을 처음으로 해낸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그것이 무엇이든 누군가 “절대 불가능해!”라고 하면 나는 흥분이 되며 그 일을 해내서 그 사람이 틀린 것을 증명 하고 싶은 욕구가 뇌동 하기 시작한다.
그때도 그랬다. 모두가 독일어도 못하면서 독일 가서 어차피 3,4일 있다가 올 걸 뭐하러 워홀 비자를 받아 가냐고, 그것도 독일에서 몇십년 사셨던 교수님까지. 난 증명 하고 싶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생각 했다. 이거 꼭 해낸다. 그리고 정말 소 뒷걸음 치다 쥐 잡는 것 처럼 대한항공에 입사 했다.
아직도 첫 날이 기억 난다.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내가 어떻게 한 거지? 할 정도로 벙 찐 상태에서. “수홍씨! 여기 와서 유니폼 갈아 입어요. 수홍씨 아마도 이거랑 이거 그리고 이거 맞을 것 같네요! 저기 다리미 있으니 다림질 해서 환복하고 나와요” 그렇게 내 손에 쥐어진 유니폼에는 “페라가모”가 적혀 있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대한항공 유니폼은 페라가모에요. 이걸 내가 입어도 되나 할 정도로 황송했다. (참고로 대한항공 넥타이는 남자분들! 손으로 빨거나 드라이클리닝 맡겨야지 세탁기 세탁 하면 박살 나요~)
나에게는 치명적인 약점 뿐이라 생각 했다. 나는 독어를 못하는데 그것도 가장 독일어가 필요한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 공항에서 그것도 항공사에서 근무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치명적인 장점이 부각 되었다. 독일어를 못하지만 나에게는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가 있었다.
그것도 중국 단체 승객들이 오면 통제가 안돼는데 내가 가면 모든 것들이 즉시 해결이 되었다. 거기다 다른 외국어가 다양하다 보니 독일에 사는 러시아 교포, 중국 교포 루프트한자 직원들을 지나갈 때 마다 보이면 “나 대한항공에서 일하는데 우리 친하게 지내요~”를 시전 하면서 ‘아 지금 생각해도 손발이 오그라 드네 ㅡㅡ; (나 햇님반 인데~ 너 장미반이지? 우리 친하게지내자).
나중에는 독일 루프트한자 지상직, 승무원들도 기차등에서 마주치면 인사 하고 다녔다. (인천공항은 어떤 문화 인지 모르겠지만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은 일단 공항증을 차고 있으면 모노레일이나 공항내 이동 버스 등에서 눈이 마주쳐서 인사하고 말 거는 것이 그렇게 어색 하지 않다. 공항증을 차고 있기 때문에 항공사나 공항직원이라는 신분이 확실 하기 때문이다.)
교포들을 포섭 했다. 그러다 보니 연대감이 독일어 원어민 직원 : 독일어 원어민 직원 보다 끈끈 했다. 루프트한자에 가서 부탁 해야 하는 업무들이 참 많았는데 그냥 가서 “따지에~(중국어로 큰누나)”를 시전 하면 바로 해줬다. 그래서 다른 직원들이 못하는 것을 내가 실패 없이 바로 해오기 시작 했다. 그렇게 자리를 잡아 가기 시작 했다. 그리고 아직도 신기한게 기동력이 내가 제일 빨랐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공항 출입카드가 나오고 휴일에도 할 일이 없을 때는 공항 출입 카드 들고 가서 공항 이곳 저곳을 돌아 다니며 탐구를 했다. 이쪽으로 가면 여기가 나오고 저기로 가면 어디가 나오고 여기서 저기를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최단거리로 갈 수 있고, 중간에 물이나 화장실 위치, 보안검색은 어디가 빠르고, 등등을 아주 자연 스럽게 익혔다.
그러다 보니 대한항공 체크인 카운터 및 탑승구로 부터 어딜 가던 최단거리 노선을 머릿 속에서 짤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VIP들 다음 항공 편에 늦은 승객들을 모시고 갈 때 내가 가면 여유있게 도착 하고 모셔다 드렸다. 그러다 보니 나한테는 늘 시간이 매우 촉박한 승객들 명단이 쥐어 졌다. 그래도 감사 했다. 내가 뭔가 월급 루팡이 아니라 나만의 장점을 대리님들 부장님 그리고 차장님이 알아 봐 주시고 내가 잘하는 것을 계속 성장 시켜 주셨다. 무엇보다 리더들의 리더쉽이 아니였을까?
어딜 가나 초반부터 기를 죽여 아무것도, 잘 하는 것도 못하게 만드는 리더가 있는가 하면, 못하는 것도 잘 하게 만들고, 잘 하는 것은 더 잘하게 만들어 주는 리더가 있기 마련이다. 지점장님이 이 것을 정말 잘하셨다. 내가 어딘가에서 일 하면서 로열티를 가지고 일을 한 곳은 여기가 처음이였다. 만약 내가 대한항공에서 지상직으로 일하면서 외국어 공부를 안 하고 갔다면, 이가 없고 잇몸으로 씹으려 해도 잇몸도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