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10년을 여기서 일해도 1터미널은 맨날 생소할 것이다. 헐떡 거리며 인포메이션 전화기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는 두서도 없이 훅 들어갔다. “아뿐 명 탑승구가 30번 이였는데, 항공기가 안 들어와요!’ 그러자 독일어로 늘 그렇듯 진정하라는 말투로 항공기 연착으로 탑승구가 30번에서 40으로 바뀌었어요. 지금 가시면 늦을 것 같은데요. 이미 탑승구로 손님들 나올 때가 되었어요.’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한다. 그때 나온 독일어 “샤이쎄”
어쩌지? 지금 어떻게 해도 도착 못 할 것 같은데, 이러는 와중 자동차가 보인다. 가끔 장애인분들이나 무거운 짐을 옮기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분과 자동차가 보였다. 대뜸 머리에 꽃 꽂은 사람처럼 헐레벌떡 다가가서는 “부탁드려요. 저기까지만 태워다 줄 수 있을까요? 제발!” 여기서 일하다 보면 다 안다. 굳이 이유를 말 안 해도 표정만 보면 어떤 상황인지 다들 안다. 내리자마자 감사의 인사. 그리고 정말 다행히 모셔야 할 분이 나오셨고 나는 안도의 숨을 쉬며 모시고 갔다. 이렇게 하루가 잘 마무리되는 듯했다.
대학에 가니 나를 지잡대생 이라고 사회가 불렀다. 인정한다. 고등학교 공부 손 놨었다. 이때 주변 사람들에게 꿈에 대해 말해도 나의 꿈에 대한 신뢰도는 없었다. 무엇이 되고 싶다.라고 하면 어머니도 헛소리 취급했다. 그래 뭐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공부 하고 싶으니 생명공학으로 진학을 선택했다.
어떻게 보면 내 마음속에 중국어가 늘 꿈틀 거리고 있었다. 중국어로 말을 하거나 들을 때 항상 이질감이 없이 그냥 찰떡같은 언어라 생각을 했다. 들었을 때 그냥 아 이건 내 인생 원픽 언어다! 거기다 중국어를 좋아 한 이유가 있는데, 영어처럼 실력 편차가 많지 않고, 똑같이 못했다. 고등학교 때 중국어 말하기 시험에서도 잘했다.
그래서 지잡대생 그냥 공부나 해보자는 생각으로 영어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너무 싫었다. 영어만 보면 울렁거렸다. 진짜 왜 하필 영어가 국제사회의 공용어인지 원망스러웠다. 거기다 남들 다 잘 하는 걸 따라 하는 것 같은 패배감을 주는 언어다. 그러다 문틈 사이로 익숙한 언어가 흘러나왔다. 그것이 바로 중국어였다. 내 로망인 언어 중국어도 해보자는 생각에 몰래 공부를 시작했다. 어머니가 내가 뭘 해도 안 믿고 이것까지 하는 것을 알게 되면 또 몇 시간 동안 뭐라 할게 뻔했다.
누군가는 이렇게 주장한다. ‘영어도 쩔쩔매면서 다른 걸?’ 그런데 같은 단어라 할지라도 언어마다 느낌이 다른 것을 알게 되었다. 영어로 ‘놀다’와 중국어 ‘놀다’라는 느낌적으로 다르다. 이게 나중에 나만의 차별점을 만들어 줄 것이라 고대했고, 여러 언어들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결국 지잡대에서 영어, 독일어, 중국어에 추가로 2개더 하기에 이르렀다.
‘취업은 누가 살아남는지’이다. 거기서 스펙으로 밀리면 큰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보통 외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분들을 봤을 때, 1개 외국어나 아니면 2개 정도가 끝이다. 그리고 나만의 결심을 확신하게 하는 계기들도 많았다. 다른 분들이 1개 열공 할 때, 내가 만약 3개, 4개, 5개를 그들 보다 잘한다면, 승상이 있었다. 느리지만 승산이 있을 거라 믿었고, 오히려 내 전략이 잘 먹혔다. 왜냐하면 해야 할 것은 많지만 속도는 1개 열공 하는 사람들 보다 빨랐기 때문이다. 5개 하면서, 외국어에 대한 스키마가 고도로 발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고도로 발달된 외국어 스키마가 나에게 남들에게 없는 능력을 부여했다. 바로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아무 언어나 가져다 놔도 이게 혹시 이 뜻 아니야?라고 하면 정답률이 높았다. 그냥 느낌상 이게 내가 가지고 있는 외국어에서 이거랑 비슷 한데 이건가? 하면 맞아떨어졌다. 남들이 없는 것이 나에게 생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