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런 질문을 한다. “어쩌다 이 일을 하게 되셨어요?”(정확히 말하면 어쩌다 사람들의 운명을 바꿔 주는 일을 하게 되었는지!)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인생이 파노라마 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대한항공에서 지상직 승무원을 할 때 까지도 나는 이런 일을 할 줄 몰랐다.
이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직업 외국어 공부 그것도 다국어 공부 컨설턴트 일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럴 때 마다 꼭 물어 모시는 것이 있다. “혹시 지금 직업 어떻게 시작 한 거예요?” 어떻게 외국어로 운명을 바꾸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는지 물어본다. 그때마다 주마등처럼 지금까지 나에게 있었던 모든 일들이 영화 한 한편을 2분 요약 한 것 마냥 지나간다.
그래! 내가 가진 스킬들이 뭐가 있나 꺼내 본다. 우선 대학교를 나왔다. 고등학생때 생1, 생2가 좋아서 생물을 전공. 대학교 가서부터는 내 인생에서 해야 하는 모든 공부량을 다 소화했다. 그러다 보니 생물학적으로 현상들을 바라 보고 다룰 수 있다. 하필 그때 외국어가 눈에 들어오는 바람에 외국어를 단기간 동안에 익힐 수 있는 툴을 개발하고자 누구도 상상도 할 수 없는 노력을 했다.
그때 내가 발명을 하고 싶었던 것은 정말 터무니없게도 모자만 쓰면 뇌파를 감지하여 전세계 모든 언어들에 대한 데이터를 뇌에 이식하는 것을 만들고 싶었으나! 뇌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알아 낼 수 있지만 컴퓨터와 친하지 않다는 현실 때문에 지금의 3개 국어, 5개 국어, 다국어 공부법을 개발하게 되었다.
그렇게 그 개발한 것을 가지고 직접 외국어 공부를 했다. 결국 영어, 독어, 불어, 중국어, 러시아어 자격증 합격하게 되었다.
평소에 모르다가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모두가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진다. 마치 내가 친구가 서울대 졸업 한 것을 알았을 때 “어! 너 서울대 나왔어? 진짜?” 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그럼 국어까지 포함하면 총 6개 언어라며 띄워준다. 그런데 난 굳이 또 5개라고 한다. 굳이 개수가 이미 많아서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것 덕분에 모국어를 포함해서 어깨를 들썩일 필요성이…확실이 말해서 이게 불쾌하다.
살면서 아시아와 유럽 대륙을 넘나들며 별의별 것들과 풍파를 제대로 맞아봤다. 어느 순간부터 앞날을 볼 수 있었다. 지인이 정말 대단한 곳이 있다면서 내 새해 운을 봐준다고 하면서 생일과 시간을 적어 갔다. 그리고는 나에 관해서 그분께 한마디 없이 봐주셨는데, 순간 헉!
너무 잘 맞다. 맞아도, 너무 잘 맞다. “인생에서 남이 겪어 볼 수 없는 것 다 겪는 사주다. 그래서 엄청 두뇌가 비상하다. 그래 내가 지상직 승무원을 할 때도 그 소리 많이 들었다. ”그렇다. 내가 하면 곧 그것이 떴다. 3년~5년쯤 지나고 반드시 트렌드가 된다. 제2외국어에 대해서도 어떤 것을 하면 유리할 지를 미리 생각했고, 먼저 가서 공부를 하면 몇 년이 지나면 벌때같이 몰려 든다. 블루오션이라면서 말이다. 그전에 나는 이미 다른 외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나는 친구들이 가진 능력과 자본주의 사회의 연결고리를 귀신 같이 찾아 내어 연결한다. 이걸 못하면 아무리 서울대를 수석으로 졸업하더라도 맥도날드에서 패티를 굽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난 간절하고 절실한 사람을 좋아한다. 친한 중국인 선생님이 있는데, 정말 대단한 분이다. 한국으로 치면 그 유명한 대학교의 한국어학당 창립맴버이다.
뵙고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는데 얼굴표정이 어둡다. 왜 그러시냐고 여쭤 봤다. 그러자 과외의뢰 가 들어오는데(주로 아이들 중국어, 영어를 가르치신다.) 자꾸 만나자고만 하고 어떻게 아이들 언어교육을 하는지 그 방법을 빼내려고 하는 어머님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한다.
나는 바로 극하게 공감한다. 그런 사람들이 참 많이 꼬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말 진지하게 문제에 대한 해답을 부탁한다면 도움을 준다. 하지만 보통 이런 분들을 경우 도움을 부탁 하는 사람한테 그 어떠한 감사함이나 존중도 없이 어떻게든 그냥 본인 필요한 것 챙겨서 나홀로 속칭 ‘가라로 해야지’ 그리고는 떠난다.
정말 질색이다. 그런데 이렇게 몇 번 겪다 보면 1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그 사람이 이런 사람인지 아닌지 감별이 가능하다. 나도 대한항공에서 지상직 승무원승 할 때 이 감별 방법을 알게 되었다. 진심 마음으로는 ‘그렇다 이거지?’ 하고서는 완전 잘못된 방법을 주고 싶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항상 그 끝을 보면 못한다. 정말 못한다. 요즘 5개국어 프로그램 연락이 오면 알고 보니 중국어 선생님인데 중국어 공부 방법 물어보는 선생님. 처음부터 밝히면 난 오히려 더 잘해주는데 그 속이 보인다. 아니 러시아어 통번역 석사까지 마치신 분이 왜? 러시아어를? 이 바닥이 좁아서 약간의 인맥만 있어도 다 아는데. (그만큼 내 프로그램 효과가 뛰어난 걸로)
반대로 대학생활을 마칠 때 까지 나에게 존경심을 가지고 와서 진정성으로 호소 하며 운명을 바꾸기를 원하던 친구들은 지금 다 운명을 바꿨다. 한명도 빠짐없이! 모두! 그들에게는 다른것도 필요없다.1,2,3,4,5 이런식으로 알려 주면 연락이 끊긴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연락이 끊긴이유가 모두와 연락을 끊고 다시 태어나기 위해, 인생을 리셋하기 위해,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리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는거다.! 나 역시 그러 했었고! 그리고 몇달안에 연락이 온다. “고마워요. 제가 해냈어요” 전화기를 끊고 ‘이렇게 또 한 사람의 운명이 바뀌었구나..’ 한다. 이렇게 간절한 사람일 수록 오면 받아줘야 한다.
나는 이전에 나를 프랑크푸르트에 묻고 왔다. 내가 한국 식당 거지 같은 생활을 청산 하고, 길거리에서 먹고 자고 하는데, 끼니를 빵 하나만 먹고 정신나간 인간같이 돌아다니면서, 그냥 무작정 회사들을 찾아가서 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졸라 댔다. 그렇게 일주일이 되는 때, 알게 된 한 부랑자가 나에게 음료를 줬다.
보온병에 든 음료. 난 너무 고마워하며 마셨는데 정신을 차리니 다 털어 가셨다. 고작 4천원 남짓 되는 금액을…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때만해도 이게 내가 지상직을 하게 될 스모킹건이 될지 몰랐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내가 신발속에 감춰 놓은 공용사물함 키는 그 사람이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살면서 그렇게 통곡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다. 얼마나 통곡을 했는지 주변에 있던 생판 모르는 사람들도 괜찮은지를 물어봤으니. 그렇게 다 울고 나니 평화로운 시내 고층 빌딩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전에는 나에게서 발견 할 수 없었던 굶주린 하이에나의 눈으로 바뀌었다. 분노다.
그리고는 그냥 아무런 이유 없이 분노의 살기가 느껴졌다. 정신이 나간다. 나 저기 있는 모든 고층빌딩 모두 살꺼야! 그리고 그 생각이 말로 나왔다. 그리고 어려운 일이 풀릴 때는 한번에 풀린다고 그날 예정에도 없던 지상직 승무원 면접을 봤다. 그것도 대한항공. 그리고 그곳에서 지상직으로 일을 하면서 어느 순간 나는 VIP담당이 된다.
상상도 못할 일 이였다. 내가 받아들여진 이유는 외국어를 이미 영, 러, 중 자격증 소유로 인해 독어는 배우면 금방 할 거라고 판단하셨 단다. 지상직 승무원이 되고 다시 거기서 VIP의전 담당 이 되고 나서 정말 내 자신 스스로가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드라마에서 나오듯 모든 브이아이피들이 처음부터 비브라늄 수저를 물고 태어 난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다.
나 같은 모래수저도 있다. 그러자 욕망과 욕심이 나를 지배했다. 건전한 욕망과 욕심은 우리를 발전시킨다. 그래 나도 저 사람 처 럼 될 수 있어! 나도 되고 싶다. 그리고 나의 상사분께 말씀드렸다. “저 이상해요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러자 웃으시며 “주수홍!! 너도 그걸 지금 느꼈구나! 여기 직원들 다 그래.” 귀국한다. 그냥 그곳에서 다른 외항사로 갈 수도 있다. 그런데 내 결정으로 귀국해서 다니던 대학을 졸업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 했다. 그것이 첫 과정이라 생각했다.
다시 지상직 승무원에서 외국어를 구사하는 대학생이 되었다. 이상하다 해외에서는 대학생이 벼슬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우대를 해주고, 인식도 학생이라 하면 뭐든 더 해주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도와줄 생각 없는 약자 취급을 한다. 그래서 대학생들 스스로가 주눅 들어 한다. 그럴 필요가 절대 없다. 앞으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골똘히 생각을 했다. 내 전공, 외국어, 전직 대한항공 지상직 등등 그리고 이 나라에서 어떤 것 할 수 있을 지 교집합을 찾아 나간다. 그리고 나의 벗이 이런 말을 했다. “외국어로 운명을 바꿔 주는 직업 어때? 운명의 신” 그렇게 나는 오늘도 외국어로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고있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늦게 다개국어에 눈을 뜨고 시작은 작았지만 어느덧 N개국어학습법으로 다언어 구사자가 되었다. 내가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