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외국어 끝판왕 되다

“미샤! 일어나, 일어나~” 거의 기절하다 잠을 자는 나를 프랑스 룸메이트 줄리앙이 나긋한 소리로 놀라지 않게 깨웠다. 정말로 이상한 것은 반수면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영어와 제2외국어들을 들으면 한국어처럼 들린다. 제2외국어 끝판왕이 되고 싶었다.

어렴풋이 작은 소리로 프랑스어로 “무슨 일이야?”라고 물었고, 룸메는 나에게 “너 8시 중국어 말하기 시험 있다고 했잖아. 지금 준비해서 나가야지 7시 20분이야”

그렇다 전날 끝내야 하는 제2외국어 공부가 있어서 매일 새벽에 일어나던 내가 해가 뜰 뜨는 것까지 보고, 잠시 30분 정도만 눈을 붙이자는 게 기절해 버린 거였다. 그리고 전날 클럽을 나가던 룸메는 내가 시험이 있다고 한 것을 기억하고 나를 깨운 것이었다.

내가 얼마나 정신없었냐면 1층에 내려가자 기숙사 스터디 라운지에 내 제2외국어 책이 잔뜩 쌓여 있었다. 책도 안 가지고 올라온 것이다. 냉장고에서 전날 얼린 물을 꺼내서 고농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었다. 계속 잠이 쏟아졌다. 외국어 책 한 권 한 권 보며 애증 관계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5분 정도 있다가 그냥 그대로 교실로 향했다. 내 앞 순서였던 학생이 시험을 보고 나왔다. 보통 사람들은 시험이 어려웠냐, 쉬웠냐, 등을 물어보는데 나는 그런 거 없다. 그런데 문제는 2시간도 못 잤던 나의 수면 시간이었다. 그렇다 제2외국어로 말을 할 때, 수면이 부족하면 과학적인 근거로 취한 것과 같은 인지능력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어도 말을 못 하는 것이다.

시험이 끝나고 그 친구가 나오자 “안녕” 하고 말했고, 그 친구는 “오빠! 상태가 왜 그래요? 시험 볼 수 있겠어요?”물었다. 나는 “물론~”이라고 하고 들어갔다. 중국인 말하기 교수님이 앉아 계셨다. 내가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교수님을 보자마자 알지도 못하는 제2외국어 광둥어로”레이 호우!”(안녕하세요),라고 했고, 교수님은 ‘이 아이가 오늘 왜 이러지?’라는 눈으로 바라보셨다.

그리고 교수님이 중국어로 ‘괜찮니? 시작해도 되겠니?’라고 하셨다. 그리고 제2외국어 중국어 말하기 시험이 시작되었다. 시간과 공간이 틀어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제2외국어 말하기 시험이 끝났다. 그러고는 직감했다. 망했다.

전날 제2외국어 러시아어 공부가 너무 잘 된다 했다. 그리고 교수님께 인사를 하고 나왔다.

분명 대한항공 다닐 때는 하루 3시간 자고 딜레이를 5번 연속으로 맞아도 제2외국어 잘만 나왔는데, 역시 나이가 들면 힘든가 보다 싶었다. 이 정도 시험은 그냥 들어가서 발로 그어도 A+점수쯤은 맞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일주일 후 결과가 나왔다. 대박 났다. 피겨 선수들이 망했다고 생각하고 전광판을 봤을 때 고득점이 나오면 왜 기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역시 나는 제2외국어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제2외국어 끝판왕 되었다.(원래는 영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