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학벌 그리고 외국어 둘 중 하나라도 못하면 인정을 못 받는 사회가 되었다. 그렇기에 그 어떤 선진국보다도 외국어 교육에 열을 낸다. 그중에서도 나의 경우 너무나도 다행히 다국어의 중요성을 미리 캐치를 하고 대학생 때 해결을 해버린 케이스다. 나도 어릴 때부터 영어유치원 다니고 그랬으면 글쎄, 외국어를 오히려 안 하려고 했을 것 같다.
내를 가장 자다가도 이불킥 하고 지붕과 하이파이브 하도록 만드는 사람중 하나가 자기는 하기 싫어하고, 할 수 없으면서 남 시키는 사람이다. 공부 못 한다고, 공부하라고, “난 못했으니 네가 해내야 해”를 사랑이라는 말로 이쁘장하게 포장하여, 이것저것 시키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만약 우리 부모님이 서울대를 나오고, 의사이고, 엘리트 계층이었다면, 그렇게 화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이유들이 하나 둘 쌓여 해외 가출했다가 정신 차렸다.
영어점수가 왜 이 모양이야!라고 하면 속으로는 그럼 ‘엄마 아빠 영어실력은?’ 이 말을 실제로 해 본 적이 있는데 엄마 아빠 때는 학원이고 뭐고 없었다. 너한테 투자한 게 얼만데! 그럼 속으로 “내가 언제 해달 했어?” 그럼 뻔하게 다음 패턴 “이 자식이 해줬더니 싹수없이!” 이 루틴이 무한 반복이다. 그래서 나는 부모로서 이중언어 능통자로 키우고 싶으면 부모가 이중언어를 구사해야 하고, 다국어 면 다국어를 구사해야 맞는다고 본다. 아니면 아예 어릴 때 유학을 보내고 가디언도 붙이거나.
처음 이중언어에 눈이 뜬 것은 학교 수업이 아니었다. 외국인 들과 이야기하는 게 재미있었기에 영어, 중국어 2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어 + 외국어라고 하지만 내 기준은 조금 다르다. 전 국민이 영어는 필수로 배우기 때문에 모국어를 제외하고 2개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2005년도만 하더라도 한국어 + 외국어 하나라고 하면 바이 링구 얼로 인정을 해 줬다. 그때는 이 정도 대단하다! 시기였기에. 지금은 그냥 기본 모국어를 빼고 3개 이상은 하는 시대다.
그렇게 영어, 중국어 이중언어 공부했다. 그러고는 러시아어 와 프랑스어 독일어에 발을 담그게 되면서, 어떠한 동기로 외국어 2개를 넘어서 중국어, 영어, 독어, 불어, 노어까지 총 5개 언어 자격증을 취득했고, 동기부여도 아주 확실했다. 일본어는 왜 안 했냐고 자꾸 그러는데 지뢰 찾기 게임하려고 슈퍼컴퓨터를 사는 것은 비경제적인 것이라 본다. 슈퍼컴퓨터에서는 윈도우98 컴퓨터로 할 수 없는 것을 해야 한다. 마치 언어로 따지면 아랍어 같은 언어 말이다.
이런 말을 참 많이 들었다. 자기가 절실해야 공부한다는 말. 이거 진짜다. 내가 절실했던 이유가 몇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의 이유가 친구를 잘 못 만났다. 외국 친구 알고 보니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대 나오고, 귀족 학교 나오고, 아버지가 회장님.. 정말 다행히도 이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집안 애였다. 아니면 알고 보니 아버님 자동차 회사 사장님, 전화 한 통으로 대사관 대사님께 뭐든 바로 해결해 줄 수 있는 집안..
처음에는 외국인과 말하기로 시작해서 이런 친구가 생기고, 마침 내가 하는 일도 대한항공 VIP 담당을 하다 보니 상류사회를 접하게 되면서 내 열정에 불씨를 붙이게 되었다. 그냥 단순 이중언어 해보자가 판을 벌리게 된 것. 한마디로 맛을 보게 된 거다. 공항에서는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고, 부탁하러 가면 날 보고 바로 해주고, 3일에 한번 장시간을 같이 보내는 승객들은 말만 하면 다 아는 국내외 회장님 사장님들이고, 얘들 집안도 이렇고, 그 나라 놀러 가면 하고픈 것 뭐든 말하면 ‘잠시만 기다려봐’ 한 마디를 하고서는 바로 내 눈앞에 나타나고.
그 아이들 부모님들은 나를 데리고 골동품 매장 가서 컵 하나를 들어 올리시더니 이거 어머니 가져다드리라고 하셔서 그 소주잔 같은 아주 작은 컵 가격 하나가 어마어마하고, 친구 집에서는 뭐가 필요하다고 말은 못 하겠고(말하는 순간 감당을 못하는 것들이 나타난다). 이중언어 하나가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면서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도 참 순박했던 게, 보통은 자격지심이 생기면, 빼앗거나, 못쓰게 만든다. 그런데 나는 좀 똘똘했다. 전혀 그런 마음 없이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방법과 철학적인 것들을 물어보았고, 그 부모님들은 식사를 같이 하거나 쉬실 때 모든 이야기를 상세하게 해주셨다.그리고 나는 이중언어가 답이 아니고 다중언어가 답이라고 확신했다.
여담으로 말 하자면 식사를 하면서도 그 비싼 음식들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밥을 먹을 때는 그냥 자취방에서 우리가 룸메와 치킨 시켜먹는 편안함이 아니라 어떻게 격식을 갖춰야 하는지, 어떻게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등 모두 알려 주었다. 이것 때문에 그 다음 부터는 매우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식사를 같이 안하는 습관이 생겼다. 반대로 모두 커버가 가능해 졌다. 하루는 비쨔랑 미슐랭 레스토랑을 갔는데, 거기서 내가 장난으로 “이봐! 비쨔야! 이럴때는 이렇게 하고 저럴 때는 저렇게 먹어야 해~ 언행을 조심하렴”라고 했는데, 배꼽을 잡고 자지러지며 나더러 학생 식당부터 미슐랭까지 모든 라이프 스타일 커버가 가능해서 내가 좋고했다.
그렇다 한 국가에 한 명 만날까 말 까 한 이런 벗들을 늘리려면 나와 공동 관심사가 있어야 하는데, 이중언어를 넘어서 다국어로 각국 말을 모두 할 수 있으면 문화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외국인이 그 나라 언어와 문화를 존중하고 좋아해 주는데 누가 싫어할까. 또 신기한 게 교육을 잘 받다 보니 의무감을 가지고 있다. 바로 누가 물어보면 하나씩 모두 알려 주려 한다. 꼭 성장해서 다시 나도 받은 것을 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해외출장 갈 때마다 하나씩 보답해 주었다. 너무 좋아했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늦게 다개국어에 눈을 뜨고 시작은 작았지만 어느덧 N개국어학습법으로 다언어 구사자가 되었다. 내가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