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했다. 암울했다. 끝이 없었다. 앞으로 사회로 나간다면 뭘 해 먹고 살아야 할지 학년이 넘어갈수록 앞은 캄캄했다.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암흑의 터널을 걷고, 끝없이 걸어가는 것 같았다. 나에게 꿈이라는 것이 있나? 오픽 도전 전까지 내 심장을 뛰도록 하는 그 어떤 것도 없었다. 나도 내가 그렇게 IH에 집착할 줄 몰랐다. 그전에는 그냥 집에 돌아와서 영화 한편 보는 것이 나에게 그나마 인생의 지루함을 잊게 해 주었다.
무언가에 미쳐야 하는 것과 미치고 싶은 것이 있다. 사람이 도는 방법도 가지가지인데 그중에서 가장 곱게 도는 것이 바로 IH에 내가 집중한 것 같이. 특정 분야에 빠지는 것이다. 오픽시험에서 고득점을 받는 것이 나에게는 구원이었다. 그냥 편하게 소소하게, 누워 있는 것은 너무나 편하다.
요즘 중국에는 오픽시험은 없지만, 그 외 영어 테스트들로 고통을 받고 있는 젊은이 사이에서 각광받고 있는 트렌드 중 하나가 타이핑(躺平)이다. 평평하게 눕는다는 것을 뜻하는데, 저항의 의미이다. 우리나라처럼 영어 IH 수준 보다 더 높은 등급을 요구하는 사회이지, 우리나라 보다 덜하지는 않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젊은이들은 더 가난해지면서 그냥 누워있고 아르바이트하고, 돈 안 쓰고 그냥 휴대폰 들고 누워만 있으면 그 누구도 나에게서 돈을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인데, 그들에게 오픽은 없지만 교육열, 출신 대학 학벌 차별은 몹시 심하다. 이게 공감을 얻었다. 그렇게 기성세대로부터 나를 지키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는 저항이 아닌 자포자기가 더 크다. 나도 그랬다. 모든 것을 포기한 것 마냥 살았다. 그런데 부모님이 자산가였다면 오픽 IH 같은 것은 필요 없을까? 의미 없이 그냥 세월을 보내는 생활을 쭉 할 수 있다. 흙 수저 대학생인 것이 너무나 분노스러웠다. 즉 누워도 평면으로 누운 게 아니었다. 가시 매트 위에 누워있었다. 그 IH가 도대체 뭐라고… 그 가시가 언제 어떻게 얼마만큼 더 파고들지는 시간의 문제였다.
현실도피가 필요했다. 숨을 못 쉬게 하는 부모님 밑에서 맨날 이 소리 저 소리 듣고, 밥 먹을 때마다 청문회가 따로 없었다. 대학생 신분으로 방학이면 더 끔찍한 것은 IH를 위해 잠시라도 열공을 하지 않으면 편하지 않았다. 집에 있을 수 없었다. 걱정을 빙자한 비난이 난무했다. 짜증 난다. 그래서 오픽 준비도 말을 안 했다.
괜히 꺼냈다가 그것 가지고도 니가 무슨 N개국어를 IH 점수로 다 따냐는 등의 각종 꼬투리를 잡을 것 같았다. 그들은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 힘들다. 그래서 아빠 월급이 짜네, 엄마는 가계 경영이 어떻네 저렇네 미러링을 시도해 봤지만 본전도 못 찾았다. 부모가 없는 곳에서 숨 좀 쉬고 싶었고 유일한 것은 나가서 오픽을 위한 외국어를 빡공 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가가 장기적으로 IH를 따서 그들이 안 보이는 해외로 도피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IH가 될 때까지 공부했다. 거기다 이전부터 시험을 볼 때면 입이 바싹바싹 타들어갔다. 솔직히 말해서 지잡대 대학생을 누가 국내에서 거들떠 나 봐주겠나. 그리고 또 집에서 출퇴근하는 역겨운 일이 발생한다. 그럼 또 계속 얼굴을 마주 보면서 밥을 먹어야 한다. 내가 이 트라우마로 가족들과 밥을 먹는 것만큼 고문이 없다. 해외가 답이다. 거기는 일단 학벌이건 나발이건 능력주의다. 그러한 이유로 방학을 이용하자는 생각을 했다. 그러려면 말이 돼야 했다. 그래야 해외에 가서 영어로 구걸하며 빵이라도 사달라고 할 것 아닌가?
오픽으로 N개국어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아니 빠진 게 아니라 이건 나에게 비상구다. EXIT 말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자니 내 운명이 거지 같았고, 그렇다고 대학생의 신분인 전공을 열심히 하자니, 졸업 후 삶이 딱 그려졌다. 나도 정말 시험을 싫어했다. 그렇기에 그때만 하더라도 IH 점수는 상상도 못했다. 나와는 먼 이야기다. 그럼에도 열심히 해서 학점이 4.0일지라도 영원히 이 주옥같은 삶은 반복이 될 것 같았다. 너무나 지겹다.
그냥 다 두고 새 출발 하는 게 빠르다. 삶이 역겹다고 걱정한다고 해결이 될 것도 아니었으며, 덮어 두고 있다가는 더 크게 터진다. 그래서 어떤 거라도 이 걱정을 잊기 위해 다른 곳으로 정신을 쏟게 해야 했다. 오픽시험에 그것을 쓰기로 했다. 처음에 몇 시간으로 시작을 했다. 멈출 수가 없었다. 잠시라도 오늘 집중을 하고 있어야 할 것에서 벗어나 멈추면 다시 내 앞날이 보인다. 나는 늘 말한다. 주위 사람들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테스트를 준비하고 마음 졸여 할 때면 나는 늘 말한다. 구원받았네.
이렇게 몰두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영어 하나로는 도저히 그 시간을 버티기 힘들었다. 오픽 시험을 그냥 프리토킹으로 보자! 이런 식으로 IH를 N 개 국어까지 해버리면 눈코 뜰세 없이 바빠질 거야! 그렇게 해야 해! 그래야 그나마 오픽시험에 빠져야 정신줄을 잡고 있지. 계속 학습을 하면서도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IH를 프리토킹으로만 성취하기 위해 부단히 오전부터 노력하면서도, 잠깐 쉬려고 하면 보기에도 뻔 미래가 보였다. 어중이떠중이로 손가락질 받고 조롱당하고. 더 나아가 그 어떠한 인생의 자유도 만끽하지 못하는 내 미래 말이다.
그래 어쩌면 나는 내 자유를 위해 공부를 했다. 일단 언어가 되면 해외에 그 어느 나라를 가서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으니까. 일단 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 그다음부터는 자신이 있으니까! 괜찮다! 그다음부터는! 그런데 그전에 내 텅텅 비어 있는 이력서를 언어부터 한 줄씩 적어나가야 한다. 그래서 방학을 통째로 갈아 넣었다. 누구는 어디 놀러 가고, 이런 거 없었다. 그리고 방학까지 그 짓은 아직도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늦게 다개국어에 눈을 뜨고 시작은 작았지만 어느덧 N개국어학습법으로 다언어 구사자가 되었다. 내가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