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그렇듯 나에게는 절대로 풀려고 해도 풀 수 없는 숙제가 있었다. 바로 영어였다. 그중에서도 영어회화가 늘 관건이었다. 영어회화학원을 가더라도 선생님이 늘 시간만 때우다가 나가는 것 같았다.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어느 날은 영어회화를 가리키는 원어민 선생님 둘이 야반도주해서 아일랜드로 밤에 도망을 갔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다 다 이유가 있다.
영어를 왜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했다. 사실 영어가 없다고 하더라도 다른 기술로 밥 잘 벌어먹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그런데 내가 영어회화에 그렇게 열을 올렸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신분 상승이었다. 공부에 미치게 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다. 부모님이 물려주거나(중학생 때 해외로 애를 유학 보내서 대학교 학사까지 해외에서 마치고 오게 하거나) 아니면 집안 환경이 거지 같으면 된다.
나의 경우 후자였다. 집에 들어오면 박해가 시작이 되었다. 아버지는 회사를 말아 먹고, 집에서 고함과 안 좋은 소리들이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었다.
내가 어릴 때 어떤 축구 선수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그 축구 선수는 집에서 맨날 부부 싸움을 하는 것 때문에 무조건 아침마다 밖을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할 게 없어서 축구공 하나 들고 나와서 축구만 했다더라. 그리고 세계적인 축구 선수가 되었다.
내가 딱 이런 상황이었다. 집에 있으면 숨이 막히고 수명이 팍팍 줄어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집 밖을 나오면 갈 곳은 오록 직 카페밖에 없었다. 피시방도 가봤고 다 해 봤는데 가성비는 카페가 최고였다.
하루는 카페에 앉아 생각을 했는데, 우리 외가 쪽 친척들이 모두 영어로 경제적 자유를 넘어 스타강사가 되어서 대박이 난 것을 보았다. 그때 생각을 했다. 신분상승하는데 있어서 영어를 꼭 해야겠다는 생각 말이다.
영포자인 상태에서 성인영어회화학원도 다 다녀보고 별 짓을 다 해봤다. 그런데 학원을 가면 늘 들었던 생각은 많은 학원들이 선생님들이 로열티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건 엄청난 것이다. 그냥 너 말해봐, 너 말해봐 하면서 영혼 없이 가르치는 경우가 정말 많았다. 영어회화학원의 한계다. 처우 계선을 해서 강사들 만족을 시키기 전까지는 해결이 될 리가 없다.
게다가 더 대박이었던 것은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도 성인영어회화학원을 다님에도 불구하고 아임파인탱큐 수준에서 벗어 날 수 없도록 애초부터 그렇게 설계가 되어 있는 경우가 정말 많았다.
결론적으로 보면 그냥 실력 유지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도저히 이렇게 하다가는 영어를 못하는 흔히 말하는 밑빠진 독에 물만 부어 대는 노력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직접 쓰려고 직접 개발을 하기 시작했다. 영어를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내 전공 생명공학을 이용해서 뇌과학 영어 1.0을 만들었다.
독감으로 고생하다가 이비인후과 가서 고 뚫는 거 마냥 즉각적인 반응이 왔다. 그냥 뻥! 뚫렸다. 성인영어회화학원 다녔을 때 보다 엄청난 효율로 바로 그냥 본 오픽 시험에서 영어와 중국어 그리고 미친 러시아어까지 그것도 시험을 2일 동안 3개를 봤는데 다 대기업에 던질 수 있는 수준으로 등급이 나왔다. 나도 보고 놀랐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영어 하나만 보거나 아니면 제2외국어 하나만 보던 때라 시험 감독관 선생님이 내가 중국어를 먼저 보고 다시 나와서 앉아있다가 다시 영어를 보러 들어가자 “시험 또 보는 거 맞아요?”라고 물어보셨다.
그렇게 3개 언어를 들고 좋아했다. 내 인생에서 혼자서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처음 해본 결과 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그냥 대외활동할 때도 그냥 다 모아다 던지면 뽑혔고, 이게 쌓이자 결국 독일 대한항공까지 취업 성공하게 되었다.
거기서 출근을 하면서 독일어를 한마디도 못했지만 나에게는 공항에서 다른 직원들이 다루지 못하는 제2외국어 들로 인해 나만 할 수 있는 업무들도 생겼고, 2달 만에 VIP의전 담당까지 올라갔다.
그러면서 VIP 장관님들, 차관님들 그리고 재벌 총수 분들을 모시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구찌의 탄생 배경도 구찌오구찌가 사보이호텔에서 귀족 및 재벌들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입는지 등을 보고 안목이 생겨 만든 기업이다.
나도 거기서 계속 VIP들을 보고 나니 영어와 그 자리까지 가게 해 주었던 다른 언어들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뇌과학 2.0 공부법을 만들었다.
성인영어회화학원에서는 절대 알려 주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 과정은 한마디로 장난 아니었다. 왜냐하면 기존에 영, 러, 중만 하는 게 아니라 나는 총 다섯 개 언어 영어, 중, 프, 러, 독을 해야 했으니 말이다. 즉 1개 가 아니고 다섯 개…
내가 독일에 있었을 때 말 그대로 레전드 인생이었다. 아직도 독일 대한항공 직원들 새로 오신 분들 빼고 내 이름을 모르는 분이 없고, 독일인 직원들은 미샤라고 하면 다 안다. 얼마 전 이옥미대리님 만났는데 직원들끼리 아직도 그때 나의 이야기를 하신다고 하셨다.
내가 직접 돈을 내려면 많은 돈이 들어서 돈 많은 사람들만 쓸 수 있는 것들을 거의 다 공짜로 누렸다. 라운지, 호텔 직원들과 친해지고 하다 보니 내가 어딜 나가면 라운지 직원들이 그냥 사용하게 해주고, 호텔을 가면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투숙했다. 영어회화학원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것들은 또 있었다.
그러면서 독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별의별 각종 공짜 혜택이라는 혜택은 다 끌어다 썼다. 외국인들이 나를 좋아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내가 영어로 소통하거나 아니면 다른 언어로 소통하던 직원들이 나한테 이유 없이 잘해주면서 회사 외에서도 그냥 부탁하면 다 해줬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왔다. 사실 거기서 눌러 앉을 수도 있었지만 (대한항공 일이 매우 빡세서 공항 내 소문남. 그래서 3개월만 일해도 어딜 가나 다 취업 가능한 프리패스가됨) 학위 때문에 들어왔다. 거기에서 나는 이미 영어회화의 맛을 제대로 봤다.
또한 나는 영어회화와 영어 및 그 외 언어들로 인해 내가 가고 싶은 곧 가서 내가 원하는 일을 찾아 취업을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국내에 미련도 없었고, 이미 스펙도 스펙이거니와 정규직에 목메어서 끌려 다지는 인생을 살고 싶지도 않았다. 다른 곳에서 나를 더 잘 대접해 준다면 나를 더 잘 대접해 주는 회사를 위해 애사심을 가지고 일하고 싶었다.
그러자 남들은 다 취업 걱정하고 있더라. 그런데 나는 취업에 대한 생각 자체가 달랐다. 친구들도 모두 다 바뀌었다. 아버지가 항공사 사장이거나 상하이에서 재벌이거나(진심 추석의 클래스가 달랐다.) 이런 친구들만 남았다.
이옥미 대리님이 그랬다. “너 왜 비즈니스석 승객들이 그것만 타는지 알아?” , “왜요?”, “한번 타고나면 돈 모아서 또 타고 싶거든 그래서 열심히 일하게 된다고 해”
딱 이거였다. 내가 한국 오자마자 영어를 다시 잡게 된 게 이 이유다. 영어회화로 이미 나는 미친 경험을 해 봤기 때문에 공부의 힘든 건 더 이상 힘든 게 아니었다. 만약 내가 성인영어회화학원에 갇혀 있었다면 이런 경험은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남에게 부탁해서 그런 부자 친구들이 부담스럽게 사줘서 좋은 레스토랑과 좋은 것들을 즐기는 게 아닌 내가 직접 그 위치에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을 해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영어와 다국어였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베이징에서 하루에 200만 원 가까이하는 100평이 넘는 호텔에서 내 외국인 친구들 다 불러다가 파티를 했을 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시궁창 인생에서 해방된 기분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