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다시 그때로 간다 해도 러시아어를 무슨 수를 써서든 꼭 할 것이다.
그렇게 시작했던 러시아어 배우기가 N개언어에 발광한게
이토록 나에게 큰 영향을 줄 줄은 전혀 알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 까지 집착해서 러시아어 성공기까지 올 줄은
내 친구들도 그리고 나도 몰랐기 때문이다.
1막 여정
무엇이든 여정을 쓰는 선구자가 된다는 것은 눈앞이 캄캄하지만 그렇기에 자유도가 높아서 좋기도 하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고 단점이 있으면 장점도 있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렇게 급작스럽게 찾아온 러시아어 배우기에게 참 고맙기도 하다. 어느 화창한 여름날이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참 뜬금없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이 말인즉슨 이유 없이 일을 벌이기 때문이다. 딱히 이유가 없고 한마디로 그냥인데 굳이 설명하자면 첫 러시아어랑 처음 만났을 때 다음날도 생각나고 그 다음날도 다시 그 다음날도 일어날 때부터 자려고 누워서 그리고 꿈속에서 다시 아침 시작 루틴으로 나를 괴롭힌다. 이럴 때 안 하면 병든다. 그래서 하기로 했지만 전공이 걸리 적 거린다. 그래 전공도 잠시 치우자!
그렇게 휴학계 서류를 챙겨서 학과장 교수님께 달려갔는데 무슨 엄청난 프로젝트 결제 받으러 가는 기분이었다. 엄청난 프로젝트이나 결제자가 들으면 어이없어서 기겁할 만한 건이였다. 그래서 군대를 가겠다고 하며 러시아어를 위해 휴학계를 던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오고 나니 위 영상 같은 기분이다. 휴학계를 던지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또 다른 시작이니 말이다. 게다가 책도 없고 뭘 해야 할지 몰랐지만 그래도 우선 여정을 떠나면 지금까지 모든 것들이 해결되어 왔으니 우선 발로 걷는 것부터 러시아어 N개언어에 다가갔다. 집 밖에 나가서 지나가는 러시아 사람들을 찾았다. 집에서 공부하고 나와서 찾고 답답하다 싶으면 아예 러시아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벤치에 앉아 기다린다. 그렇게 발로 뛴다.
그러고는 러시아어가 있다고 하면 무조건 알바를 마련해서라도 대륙이라도 날아간다. 원하는 무엇이라면 무조건 가야 한다. 그래서 포럼부터 러시아 체험학습 등 무조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러시아어 배우기에 집념을 쏟아붓는다. 모든 열정과 내 시간을 불태우기로 한다. 그렇게 여정은 집 앞부터 러시아까지 이어진다.
2막 고통과 신자
나는 이메이진 드래곤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도전의 기승전결을 모두 담아내기 때문이다. 러시아어의 과정 중에 중급으로 들어가고 그 외 외국어 또한 같이 하면서 본격적인 나와의 싸움으로 들어갔다. 이때부터는 내가 좋아서 하는 게 아니고 너 왜 안되니 단계이다. 나와 싸우며 “나 그만두고 싶은데!” , “우리는 그럴 수 없어!”를 외치며 계속 러시아어로 말하기와 치고받고 싸운다. 그리고 그 답답함의 고통 속에서 나는 한국어 자아가 무너질 때까지 계속 펀치질을 하며 싸운다.
이 노래 가사랑 너무 맞아떨어지는 게 어릴 때 공부 못해서 받았던 상처의 서러움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 내가 선택해 놓고 또 내가 쓰러지게 된다면 그것은 다시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거리와 가십거리를 하나 더 제공하는 꼴이라고 생각하니 그냥 도저히 넘어갈 수가 없다. 그래서 러시아어 배우기 고통이 신자를 만든다. 러시아어 책을 1과만 하면 된다. 그다음에 하나만 더 하나만 더! 넘어지고 일어나고를 반복하는 시기다. 그러다 보면 무슨 가정폭력 마냥 러시아어에게 두드려 맞는다. 이러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일상이 원래 이렇게 공부한테 두드려 맞는 거구나 하면서 익숙해지기 시작하고 이게 다시 나를 일으킨다. “아야!” 넘어지고 일어나면 또 반복을 한다. 그러다 보면 오늘도 넘어지는구나 한다.
3막 대가
점점 날이 가면 날이 갈수록 러시아어 배우기로 N개언어까지 자격증들을 만들어 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그때의 내 심정이 정확히 이 가사와 같았다. 조금만 버티자 러시아어 성공기 좀 써보자. 이대로 가다간 죽도 안된다. 밤만 되면 아니 24시간이 시험을 못 보면 어떡하지? 그래 나는 타고났다! 그렇게라도 믿어야 한다. 휴학의 대가는 매우 컸다. 어니 어쩌면 나는 미래의 나의 면접관이라는 괴물과, 내가 실패할 때 좋아할 괴물들에게 먹잇감이 되기 싫어서 그렇게 필사적으로 했다. 반드시 살아남겠다. 그때부터 러시아어 공부에 감정이 들어가지 않았다. 왜 나를 힘들게 하냐의 대상이 아닌 매일 같은 똑같은 일상 속에서 대비 또 대비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렇게 벼랑 끝에서 패기가 생긴다.
4막 번개
그렇게 내가 목표하던 모두 러시아어 배우기를 마침내 성공해냈다. 자격증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쏟아진다. 그때부터 나를 공부 못한다고 비웃거나 아니면 무시 혹은 비아냥 거린 사람들은 정확히 둘로 나뉘었다. 첫 번째 아무 말 못 하고 그냥 구석으로 짜지거나 아니면 나에게 들러붙어서 비법을 알려달라고 난리를 쳤다. “응~ 안안랴줌!~” 저리 가! 그렇게 다들 찍소리 못하더라.
5막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자!
그다음부터는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논다. 그동안 러시아어 배우기 응축의 시간을 가지고 있으면서 보상심리라고 해야 하나? 그것도 N개언어로 다양한 친구들과 다 같이 논다. 코시국이라 지금은 그렇지만 곧 좋아질 것이라 본다.
외국인 그리고 러시아 친구들이랑 같이 노래방도 가고 파티도 하면서 놀 때는 제정신이 아니게 논다. 신기한 건 규모도 그냥 일반인들과 달라진다. 역시 열심히 일한 만큼 놀 때마저 광분을 한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