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워킹홀리데이 망할 뻔 항공사 직원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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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2, 2025

호주 워킹홀리데이 망할 뻔 항공사 직원 되기

드디어 하늘 장막이 사라졌다. 이제 해외를 다녀와도 자가격리가 없다. 이제 워홀이 다시 뜨고 있다. 보통 호주 워킹홀리데이와 그냥 워킹홀리데이 자체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단 하나의 이유로 준비를 한다.

그것은 바로 도피다. 현실도피가 아주 강하다! 이걸 어떻게 아냐면 내가 그랬으니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집에서는 부모님이 그렇게 잔소리를 하셨다.

밥을 먹기 위해 식탁으로 갈 때마다 청문회는 시작된다. “취업 준비가 어쩌고저쩌고, 영어 점수가 어쩌고저쩌고, 학점이 이러쿵저러쿵” 나도 한 성격하기 때문에 똑같이 “아빠 월급이 이러쿵저러쿵, 어머니 살림 경영이 어쩌니 저쩌네” 해 봤지만 그것도 그때뿐 이였다.

가출을 결심했다. 워킹홀리데이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났다. 그렇다 가출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부모님 영양권 아래 있는 순간 이 악순환은 무한 반복이 된다. 예를 들어 국내로 하게 되면 나 스스로부터 무너진다. 왜냐하면 조금만 힘들면 집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해외가 답 아였다. 짱구를 굴리기 시작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가야 하나? 처음에는 워킹홀리데이 가능 국가가 호주뿐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희망 회로를 이렇게 돌린다.

그래 가서 영어 공부도 하고! 호주 외국인 친구들도 사귀고, 갔다 오자마자 영어 시험도 봐서 성공 스토리와 그 신화를 벌써부터 머릿속으로 쓰기 시작한다. 우리 전 직원도 그리고 회원님들 중에도 갔다 온 사람들 이야기 들을 때마다 등골이 서늘하다.

만약 내가 호주로 갔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영국이나 호주 그리고 캐나다가 인기가 많은 것은 당연히 아주 당연히 영어도 배워올 목적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양가죽 벗기기, 농장 인생이다. 나는 우리 사촌 형이 호주 워킹홀리데이 다녀와서 거기에 대한 일언 언급이 없었던 것, 그리고 만약 여기 가서 농장이나 아니면 힘들일만 잔뜩 하고 한국에 영어도 못하는 상황으로 귀향해서 면접관 앞에 가서 “가서 놀다 왔군요!” 소리를 들을 것 같았다.

영어 포함 중/독/러/프 자격증

그래서 생각을 한 게 그럼 어디로 갈 것인가? 독일이 보였다. 그래 여기로 정했다! 호주 말고 여기 가자! 뻔하디 뻔한 곳 말고, 내가 한번 개척해 보자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국외 가출을 하려고 준비를 하는데 친구들이 물었다. “너 그런데 독일어 할 수 있어?”

아니…;;;;

그러자 미쳤다는 소리가 나왔다. 지금은 소프트파워가 많이 약해져서 밉상인 국가이지만 나에게 독립심을 키워준 국가가 있다. 바로 중국이다. 거기서 나는 사람은 여권, 휴대전화 그리고 지갑만 있으면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이미 영어, 러시아어, 중국어 자격증이 있었으니 뭐든 가서 아름다운 곡선을 그릴 수 있는 손짓과, y=f'(x) 도함수 그래프 곡선을 그릴 수 있는 발짓이 있었기에 어떻게든 의사소통은 되겠지 뭐! 하면서 짐을 쌌다.

그리고 무작정 호주 워킹홀리데이가 아닌 독일로 떠났다. 그 와중 나는 학과가 제약 쪽과 연관된 학과이니 갔다 와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고, 가면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300유로 정도만 챙겨갔다. 그렇게 도착하자마자 나는 개고생을 했다. 생명이 위독할 뻔한 일도 있었고,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개고생을 뽑자면 도착 후 그 2달도 안되는 시간이었다. 내가 노숙생활도 해볼 줄이야.

사람의 무의식은 정말 무섭다. 그동안 공항을 다니면서 항공사 직원들이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 나도 저런 직업 가져 보고 싶다! 지방대 자격지심에 콤플렉스 덩어리였던 나는 이 환상을 그냥 고이 접어 무의식 속에 넣어 두었던 것이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요정 할머니가 나타나서는 호박 비행기 만들어 주고 구두를 신기더니, 내가 대한항공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정말 갑분 항공사 직원 되기에 성공한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도 그렇게 말리시고, 워킹홀리데이 일 자리 구하기 실패했으면 집으로 꺼져라고 했던 사람들, 내가 실패해서 한국에 왔다면 좋아할 사람들의 바람을 다 묻어 버리고 스스로 힘으로 직업을 구했다.

그러자 모두의 태도가 돌변했다. 부모님이 가장 좋아하셨다. 호주로 갔다면 농장에 있었어야 하겠지만 나는 나라를 잘 선택하고 게다가 더 나아가 기존 3개국어 어학 자격증과 그 외 내 역량을 총 발휘하여, 내가 환상으로만 꿈꾸던 곳에 들어갔다. 그것도 독어로 한 마디도 못했던 내가.

처음 유니폼을 입었던 날이 기억난다. 나도 너무 신기해서 거울만 환복 후 빨리 나가야 하는데 거울을 그렇게 쳐다보고 있었다. 신기해서.

이때부터 위 아 더 월드 대 환장 파티가 열렸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로 갔다면 항공사 직원까지 나는 상상을 못 했을 것이다. 나는 독어를 못했지만 강력한 3개국어가 나를 뒷받침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독일이나 다른 한국 직원이 못하지만 나만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100명이 넘는 중국인 승객들 진정시키기, 중국인 VIP 모시기 그리고 일 특성상 다른 항공사 혹은 공항 직원들 협조가 많이 필요한데, 돌아다니며 인맥을 쌓아 두다 보니 중국인 직원이나 아니면 러시아에서 이민 온 직원들과 친해지기 시작하더니 독일 직원들이 가서 못 얻어 온 협조는 전부 내 담당이 되었다. 그렇게 야금야금 내 영역을 넓혀갔고, 아직도 대한항공 프랑크푸르트 공항지점에서 대리급 이상 분들에게 내 이름을 말하면 아직도 전설로 남아있다.

다국어를 하면 어느 나라를 가던 다 길이 있다!

3-5개국어 공부 했던 비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