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정말 너무 싫어서 중국어를 추가해 버리고 말았다. 중국어회화가 처음에는 나에게 엄청 큰 위안이 되었다. 그 시작이 나를 N개국어가 가능한 다국어 구사자로 만들어 줄 줄은 꿈에도 모른 체 말이다.
우리는 수많은 선택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중국어를 처음 선택한 것만으로 인생이 완전히 바뀌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영어 피해서 중국어회화 부터 덜컥 시작한 다른 이유를 찾자면 해외라는 곳에 나가고 싶었다. 그리고 다국어 구사자 이력서를 가지게 될 줄은 기대도 안 했다.
내 나이 30대 중반인데 해외를 수도 없이 나갔다 들어왔다. 심지어는 해외에서 살기도 해보았지만 대학교에 막 들어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은커녕 중국도 나가 본 적이 없었고, 학교 수학여행으로 일본 한번 다녀왔었다.
아버지 사업이 중국 쪽과 관련이 많아서 중국어를 해 두면 아버지가 중국어를 못 하시니까 어떻게든 한 번 중국을 갔다 올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겠지라는 생각에 중국어를 시작했다.
뭔가를 해야만 했다. 안하면 그냥 가라 앉을 것만 같았다. 나는 중,고 공부를 정말 못했고, 그 대가로 지방대를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헬렐레 팔렐레 하면서 아무 생각없이 놀아 제끼기 시작했다. 그렇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막 놀았다. 그런데 2학기가 지나가면서 이대로 과연 내 인생은 괜찮은가? 고민이 시작 되었다.
그 고민은 단 하나로 부터 시작이 되었다. 학교를 가려고 나는 항상 지하철에서 하행선 쪽에 서 있었다. 그러면 상행선을 타고 서울에 있는 학교를 가려고 하는 학생들이 건너편에 보였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내가 이대로 만약 졸업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라는 질문을 했을 때 빈 털털이에 백도 없고, 실력도 없고, 무엇보다 이력서가 대졸 하나에 운전면허 자격증만 달랑 하나 있다면? 마치 이력서가 스티븐잡스의 깔끔하게 핵심만 남기고 다 지우기 이력서라면.
그래서 눈에 닥치는것 내가 하고 싶은거라도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중국어를 들고 파기 시작했다. 그렇게 중국어회화를 한참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갑작이 중국어가 아주 핫 한 언어로 떠오르기 시작을 하더니 너도 나도 중국어회화에 뛰어들었다. 게다가 N개국어, 다국어 구사자 인기가 생기기도 전인데도 점점 사람들이 영어랑 중국어는 기본으로 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후에는 러시아어, 독어, 불어도 했다. 이때 부터 조금씩 역겨웠던 지방대 생의 굴레에서 벋어 나는게 점점 느껴지기 시작을 했다.
내 친구들은 나보다 더 좋은 대학을 나오고서도 그냥 그저 그런 취업을 하거나 아니면 인서울 졸업장과 토익만 하거나 아니면 조금더 깨어 있는 친구는 중국어나 일본어를 했다.
그런데 내 이력서는 매우 특이 했다. 영어회화, 중국어회화, 독일어회화, 러시아어회화, 프랑스어회화 자격증이 점점 완성이 되어 가면서 그 사이에 남들이 얻기 힘든 것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랬던 인생의 탈출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국제컨퍼런스에 모든것이 시작 되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대회활동이라는 것 자체가 막 생겨나던 때였다.
나는 내가 배운 중국어와 다국어 구사자로써 N개국어를 실전에서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 청소년 국제 컨퍼런스에 참가를 했다. 그것도 내 전공에 맞게 과학 팀으로 말이다.
그렇게 중국어를 시작으로 대학에 와서 첫 대외활동으로 경기도 명예홍보대사가 되었고, 과학 부분 경기도지사 상을 타게 되었다. 말로만 듣던 외국어+전공 도지사상+명예까지 얻어 버렸다.
그리고 그 다음 부터는 내 인생이 프리패스가 되어 버렸다. 어딜 지원하던 면접에서 떨어 는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성장하다가 독일로 가출! 대한항공 독일 법인 VIP의전 담당까지 했다.
이거 이해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지 모르겠는데, 절대 놓을 수 없는 것을 들고 있는 심정이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중국어 공부를 결심 하고 그리고 어떤 사람은 작심삼일을 하기도 한다.
흔히 말해 젊은 꼰대들, 아니면 꼰대들이 열심히 안해서 그렇다 헝그리 정신이 없어서 그렇다 뭐다 하는데. 솔직히 말해 나는 틀린 말은 아니라 생각한다.
내가 독일에서 한식당 노예-> 노숙자를 거쳐 대한항공에 처음 입사 했을 때, 장기간 노숙의 여파로 고열이 났다. 그런데 한국이라면 열난다고 하며 집에 가서 쉬었겠지. 그런데 나는 거기서 마저 직업을 잃으면 갈 곳이 없고 한국 돌아가야 하고 한국 돌아 가면 내가 실패하면 기뻐할 사람들이 낄낄 깔깔 거리는 모습을 상상 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갈 곳이 더이상 없었다. 그렇다 중국어회화도 그렇고 다국어 구사자가 되기 까지 나는 N개국어 만이 나를 구원해 줄 동아줄이라고 생각했다. –
어디에 쓸지는 나중에 문제였다. 이 손을 놓는 순간 인생 루저가 된다는 생각에 집착했다. 이 집착이 남다 보니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뭐든 꽂히면 집착을 하게 되었다. 될때 까지 다른 것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이게 사람이던 학문이던 뭐던 해결 될때 까지 잡고 늘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잡고 늘어나다 보니 각종 면접이 들어와도 풀 썰들이 많아 졌다. “그냥 동아리 활동 해봤어요~”가 아닌 중국어 포함 다섯가지 외국어 회화 자격증 취득 한 썰 풀어 드려요!”
“그게 전공인 생명공학과 관련이 있나요?” 라고 면접관님이 물어 보면 “네, 하다가 막혀서 일주일간 뇌과학 회화 공부법을 만들었거든요!”. “오! 그 방법이 뭔가요?” . “뽑아 주시면 알려드림” -> 다음주 부터 출근
사람들은 말한다. 이 자격증이 좋네 저 자격증이 좋네 한다. 그런데 최고의 자격증은 난 아직도 중국어회화도 하고, 외국어 자격증이라 본다. 왜냐하면 내가 이력서가 완성 될때 대기업 인사 담당자 출신 분들은 다 하나가같이 말했다.
10명 이면 10명 다 정확하게 이 순서대로 말씀 하셨다. .”와! 세상에”->”정말 열심히 살았네요!”-> “한국에 미련 없으면 한국에서 못구하면 해외 나가서 원하는 곳에 취업해요!” 그렇다 인생 최대 보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