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1학년 때 그냥 전공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다가 외가 쪽이 영어 스타가 집안이라 그런지 (물론 생명공학을 해서 알지만 후천적인 능력은 유전되지 않는다.) 환경 탓인지 외국어 공부에 빠지게 되었다. 그때는 내가 이것으로 지방대 취업 스펙을 쌓아 인생역전을 할 줄 몰랐다.
처음에는 그냥 외국인들과 소통하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그렇게 외국어를 공부하던 와중에 점점 알게 되는 한 가지 현실이 있었다. 바로 지방대 취업이었다. 나는 지방대생이었고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무기가 없으면 인생에서는 답이 없던 상황이었다.
그렇게 2학년 때까지는 외국어와 전공 공부 중에 전공에 더 힘을 실어 둔 상황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외국어 자격증은 없었고 그냥 이력서에 딱 세 줄 쓸 것 밖에 없었다. 아니다 네 줄이다. 덕동 초등학교 졸, 천명 중 졸, 청명고 졸, 호서대학교 재학 중.
이렇게 단 네 줄로부터 모든 것들이 시작이 되었다. 물론 고등학교만 나온 분들도 계시겠지만 대학생들이 많은 대한민국에서는 어떻게 보면 인 서울을 못하면 아주대, 카이스트 같은 특정 대학교가 아니면 전부다 지방대로 보니 충남권이었던 내가 지방대 취업 평균 기준이 아니었을까 싶다.
첫 단추
고등학교는 모두 평준화가 되어 있고, 대학교를 인 서울을 하지 못했으니 나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셈이었다. 그때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아주 냉혹했다. 어디 가면 어느 대학 다니냐고 그렇게 물어 보더라, 그래서 늘 “흐~서어대요~” 말 끝을 흐렸다. 그게 나의 첫 취업 스펙이었다.
그때만 해도 해외 단기 교환학생이라 해서 방학 때 해외 대학에 한 달 정도 가서 연수를 받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외국어 공부를 하면서 영어가 아닌 중국어에 빠져 있던 나는 중국으로 무조건 가기로 했다.
그때 그게 나에게 아주 큰 가르침을 주었다. 중국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내가 어느 대학에서 왔는지 관심이 전~혀! 단 1도 관심이 없던 것이다. 중국에서 대학을 나온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다 우리가 외국인 친구를 사귀어도 그 친구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게 아닌 이상 그 사람이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먼저 물어보는 일은 드물다.
그들이 관심이 있었던 것은 오로지 나의 중국어 실력이었다. 그래 이거다 싶었다. 중국에서 일하는 한국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외국어를 정말 빡세게 공부해서 나중에 해외로 취업하면 내 주홍 글씨가 사라질 것 같았다.
그래서 한국에 오자마자 영어와 러시아어를 더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외국어 공부를 하는데 영어, 중국어, 러시아를 동시에 하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그리고 결과
우리들의 로망이 있다. 바로 우리들이 좋아하는 일로 업으로 삶고 일을 하는 것이다. 가능하다 그 과정이 주옥같아서 그렇지. 사람이 무언가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질리지 않을 정도만 깨작 깨작 해서다.
나도 외국어를 질리지 않을 정도로만 깨작 깨작 했다. 그러다 보니 자격증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 나는 무언가 그동안 깨작 깨작 거리기만 해 봤지 목표를 세우고 거기까지 끝장을 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게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나쁜 것이 될 수도 있다. 바로 자격지심이 생기고 나서부터다. 나는 외국어를 공부해서 친구들과 소통하며 회화를 할 수 있는데 아무런 증명서가 없다 보니 알바 면접이나 아니면 어딜 가서 그 실력을 증명해야 할 때 나 자신이 정말 구질구질 해졌다.
마치 호서대요!라고 했을 때 “그 학교는 어디 있니?”와 같은 꼬리 질문을 받을 때와 같은 굴욕감이랄까? 이대로 가다가는 망하겠다 싶었다.
이때의 현실은 나는 게 잡대 다니는 미래 면접 병풍이었다. 면접까지 가면 좋지 면접도 못 가면 그건 그냥 면접 시스템 서버나 낭비하는 이력서가 될 것 같았다.
미쳐 보자
외국어 공부에 미쳐 보기로 했고, 외국어 시험에서 처음으로 영어, 중국어 IM2, 러시아어 IM1이 나왔고 바로 다시 봐서 IM2가 나왔다. 그때부터였다. 외국어 스펙이 따라오면서 스펙이 복리로 붙기 시작하면서 지방대를 다니는 학생의 취업 스펙이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그냥 조그마한 대외활동은 그냥 들어가게 되었고, 눈을 떠보니 내가 국제 콘퍼런스에서 과학 부분 도지사상을 받고 있었다.
또 눈을 떠보니 독일 대한항공 소속 지상직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한국에 왔을 때 나는 이미 전사가 되어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독일에서 한국에 오자마자 해외인턴이 필수 스펙으로 들어가면서 8대 스펙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때부터 내가 시작하면 1-2년 사이 사람들이 다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더 외국어에 중독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영어, 러시아어, 중국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전부 다 따보자 고득점까지 내가 졸업 전까지 해 볼 수 있는 것은 모두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해냈다.
그때부터 나는 면접 병풍이 아닌 메인이었다. 졸업 시기가 다가오자 우선 남들이 다 그렇듯 내 이력서를 취업 사이트에 올렸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막 전화가 왔다. 2일에 한 곳에서 두 곳꼴로 말이다.
직무가 중요하고 경력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이미 이것을 갖추고 있었다. 그것도 휴학 4년을 다 썼는데 오히려 전직 대기업 인사담당자분들은 내 이력서를 보고 공백이 없다고 하셨다.
학점? 3.2다. 오히려 이거 방어하느라 힘들었겠다고 했다. 일관성 부분에서 솔직히 외국어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어느 분야나 외국어를 하면 날개를 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만약 제약 쪽이면 제약 해외영업처럼 말이다. 나는 게다가 스토리 자체가 내 의식의 흐림이었는데 그게 다 일관성이 있었다는 게 신기했다.
생명공학을 전공하다가 이러다 국내에서 망할 것 같아서 외국어 공부를 시작함 그런데 외국어 덕에 국제 콘퍼런스에서 과학 도지사상을 따게 됨 그리고 이 외국어를 하는 방법 적 측면에서도 나는 일반인들과 다르게 뇌과학을 연구해서 그 방법을 찾아서 영어 IH, 중국어 IH, 러시아어 IH, 프랑스어, 독일어 IM이라는 정확한 수치가 있다.
그리고 거기에 항공사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도 대한항공에서도 이 학생 써보고 좋았다는 레퍼런스가 있음. 대기업 공인인증 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거기서 진짜 레전드 급으로 일을 잘 해서 9년이 지난 지금 인사담당자가 그곳에 전화해서 나에 대해 물어도 차장님, 대리님들이 좋은 말씀 해 주실 것은 분명함.(아직도 연락하고 지냄)
취업 깡패가 되다
그다음부터는 눈에 베는 것이 없어졌다. 우선 부모님 떼고 1:1로 역량으로 면 맞다니 뜨면 무조건 이길 자신이 있었다. 나는 독일에서 노숙까지 해봤다. 그러다 보니 멘탈이 보통 멘탈이 아니다. 지금도 사업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멘탈 갑이라고…
외국어 공부를 시작으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대학생활 내에 모두 다 했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 선택권이라는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회사들이 면접 보라고 연락이 오고 이상한 회사가 아닌 연봉 아주 많이 주는 회사들 말이다. 내 경력을 보고서는 중국 대기업 CEO 보좌관까지 제의가 들어왔으니 말이다. 아주 많이 준단다.
여기서 의문점을 가질 수 있다. 그럼 왜 취업으로 쭉 안 갔니? 사실 나는 독일 대한항공 다닌 것 하나 만으로 독일 취업이 가능하다. 지금도 가능하다. 왜냐하면 회사가 공항 내에서 업무가 빡세기로 소문이 나서 3개월만 일해도 경력증명서만 있으면 아랍에미리트 항공사부터 시작해서 들어와 있는 모든 항공사에 취업이 가능하다.
그리고 국내에서 취업을(해외영업 CIS 담당) 잠깐 해보고 3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이유가 있었다. 외국어 공부 하나로 나는 모든 욕구를 다 채워 버리고 말아 버린 것이다.
인간에게는 다섯 가지 욕구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욕구는 가장 아래 것이 채워져야 다음 것이 채워지고 그것이 채워져야 다음 것을 채울 수 있다.
첫 번째 생리적 욕구 그다음이 안정의 욕구, 이건 우리나라가 난민 국도 아니기 때문에 채우는데 문제는 없다. 그리고 그다음이 소속과 애정이다. 나는 대한항공에서 일을 정말 열심히 해서 소속과 애정을 아주 듬뿍듬뿍 받아 평생 채워야 하는 것을 다 채웠다. 그래서 명함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 욕구를 충족 시키 못하면 그렇게 명함에 집착을 한다. 50이나 60이 되더라도. 뜬금 장난도 아니고 “나 어디 소속이야!”라고 누군가 외친다면 “아 저 사람은 소속 욕구가 결핍되어 있구나”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그다음이 인정의 욕구다. 친구랑 장난이 아니고 “나 이런 사람이야~ 칭찬해 줘~”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본다면 인정욕구 불만이구나! 생각하면 된다. 나는 졸업 때까지 외국어를 포함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어느 정도로? 시간을 돌려 그때로 돌아가기 끔찍할 정도로.
이때부터는 인정의 영역을 벗어난다. 초월을 하게 된다. 그다음이 자아실현이다. 나는 외국어 코칭을 하기로 결심을 하고 그 해외영업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자아실현을 하고 있다. 이게 마지막 욕구다. 그 작품 중이 회화 컨설팅과 토트의 도서관이다.
이렇게 욕구 끝까지 올라가는 사람이 드물다고 한다. 나는 외국어 공부를 해서 스펙을 쌓았고 그리고 모두 초월해서 인생역전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