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대외활동 외국어 공부 3개 국어 스펙
요즘 대학생들 만큼 고민하는 세대가 있었을까 싶다. 대학생 대외활동부터 시작해서 학점도 방어를 해야 하며, 거기다 전공과 관련된 교내 활동 및 대외활동까지 해야 하고 거기다가 그것도 모자라 외국어 공부까지 해야 한다.
거기다가 경쟁력도 매우 세서 일면 스펙이 스펙을 만든다는 말까지 떠돈다. 즉 아무런 스펙이 없다면 대학생 대외활동을 아무리 신청해도 뽑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의 첫 교내 활동은 과학 경진 대외였다. 아직도 그 당시 나는 1학년이었다. 1학년 2학기가 되었을 때 처음으로 교내 과학 관련 대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마음이 매우 설레었다.
나는 참 과학을 좋아했다. 이게 어느 정도였냐면 초등학생 때는 교내 과학의 날 행사에서 상도 받고 그랬다. 나는 그냥 글라이더 만들기를 너무 좋아했는데(이때 비행기를 좋아해서 이 영향으로 항공사를 갔었나?) 나는 그냥 즐기려고 참가했는데 눈 떠보니 1등이었다.
그때부터 나의 이상한 변태적인 성향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도 대회에 참가 시키기 위해 수업이 끝나면 집에 못하게 하고 학교에 6-7시까지 남겨서 만들기 연습을 시켰다. 나는 이게 좋았다. 마치 아이언맨의 한 장면처럼 내가 과학자가 되어 감금 당해서 신무기를 개발하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대학생이 되기 전부터 나는 내가 뭔가에 빠져서 해지는 줄 모르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고 나서 나의 첫 대외활동에 참가하기 전에 교내활동으로부터 시작을 했다. 나는 그냥 과학 대회 참가를 이렇게 해서 이런 쪽으로 해서 나가고 싶다고 학과장 교수님께 말씀드렸다.
그러자 교수님께서 생각을 5초간 하시더니 실험실을 빌려주시고 석사 하시던 형님까지 자문을 붙여 주셨다. 그리고 그때 나를 찾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부터는 집에 못 갔다. 그렇다 과학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그렇게 밤새워 실험하고 대상은 아니지만 상을 탔다.
그때 알았다. 이것을 365일을 하는 것이 과학자들의 삶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렇게 까지는 도저히 못하겠다고 말이다. 한참 그때 나는 동시에 외국어 공부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외국어와 전공이 같이 공존을 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3개 국어가 나의 영역에 들어왔다. 나중에는 5개 국어가 되었지만…
외국어 공부를 위해 뇌과학 공부법까지 개발할 정도였으니 나는 외국어에 늘 진심이었다. 그러자 대학생 대외활동으로 아주 재미있는 것을 잡게 되었다.
바로 여가부(지금은 소프트파워가 좀 그렇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에서 주체 화는 청소년 해외 탐방이었다. 나는 러시아어에 빠져 있었기에 러시아에 그렇게 꼭 가고 싶었다.
코로나 전만 하더라도 저가 항공 타고 쉽게 갈 수 있는 나라였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루블 화폐 가치가 비쌌고 흙 수저 대학생이 자비를 들여가기에는 어려웠다. 대외활동과 외국어가 합쳐지기 시작했다.
여가부에서 각 청소년 센터에 학생을 면접 보고 뽑아서 데리고 가서 해외 탐방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미치도록 가고 싶었다. 반드시 가야 했다. 백도 없고, 쩐도 없었지만 나는 이걸로 러시아를 갈 수 있는 대학생 대외활동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늘 말하지만 면접은 둘 중 하나 하면 붙는다. 대외활동 면접도, 대기업 면접도 이 세상에 그 어떤 면접도 해당이 된다. 들어가서 면접관과 면접을 다 씹어 먹거나, 아니면 우쭈쭈!하게 만들면 된다. 우쭈쭈 작전은 정말 면접관이 아! 이 아이 뽑아 놓으면 정말 열심히 할 것 같아! 꼭 뽑고 싶네!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100% 확정으로 붙어야 했다. 나의 첫 대외활동이었지만 스펙과 전혀 상관없이 나는 러시아를 가고 싶었다. 면접관과 면접을 씹어 먹으려면, 씹어 먹을 정도로 준비를 해야 한다.
대학생 대외활동 프로젝트는 연해주 고려인과 관련된 것이었다. 나는 연해주, 고려인 관련된 책들을 사서 다 외웠다. 내가 그렇게 국사 공부를 했으면 1등급이 나왔을 것이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다 외웠다.
이건 나에게 아주! 아주! 유리한 싸움이었다. 왜냐하면 거기 계신 면접관 분은 청소년 센터 관장님, 공무원, 교수님으로 구성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전공 교수님이라 하셔도 연구하는 쪽만 집중을 하다 보면 앞에 내용은 까먹는 것이 인간이다.
마치 우리가 대학교 4학년이 되면 1학년 때 배운 내용이 가물가물 하듯 말이다. 그렇게 대외활동 면접장에 도착을 했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었다. 이미 나는 3개국어 자격증이 있었고, 그중 하나가 러시아어 FLEX 점수가 당시 3개월 만에 외대 노어노문학과 졸업 가능 점수였다.
언어도 언어지만 본질은 연해주와 고려인이었다. 내 옆에 S대 노어노문학과 친구가 있었는데 러시아어를 한 마디도 못했고, 내가 있었고 그 옆에 그 센터에서 활동하는 친구 한 명이 있었다. 이렇게 3명이서 대외활동 면접을 들어갔다.
내 차례가 되었다. 지원 동기를 물어보셨다. “제가 지원한 이유는 러시아어에 관심이 매우 관심이 있고, 연해주와 고려인에 대해 알게 되고 거기에 또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연해주, 고려인에는 단 1의 관심도 없었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물어라… 제발 물어라… 덥석 물어라…’ . “뭐라고요? 고려인에 관심이 있다고요?”. ‘물었다!’
하면서 그 말을 검증하려 하셨다. 온갖 폭풍 질문이 쏟아졌고 나는 연도까지 말하면서 모두 받아치고 심지어 면접관님이 잘못 말씀하신 부분까지 교정해 드렸다.
그 면접은 영화 공공의 적 3에서 거성의 이 회장(박희순 배우님)이 “일식집인 줄 알았으면 칼은 안 들고 와도 될 뻔했네!” 밈 같았다.
분위기기 정확히 이랬다. 그리고 나는 그곳을 나와서 주저앉았다. 면접이 끝났는데도 30분을 앉아 있다 갔다. 당연 합격했다.
그리고 나는 러시아에 가서 나는 참가자로 참석을 했으나 3개 국어, 러시아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나뿐이어서 가이드 선생님이 없을 때는 내가 거의 수행 및 인솔 통역을 했다.
그리고 잘 다녀와서 이때부터 대학생 대외활동은 그냥 따 놓은 당상이었다. 일종의 면접 프리 패스권이 생긴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 면접을 보셨던 교수님께 관장님이 다녀오셔서 내 칭찬을 그렇게 많이 하신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못 알아봤는데 어느 대외활동을 지원해도 거기에 그분이 항상 계셨고 나중에 후일담을 들어 보면
“얘는 꼭 뽑아야 한다”라고 하셨다고 늘 전해 들었다. 이래서 사람이 평판이 중요하다.
그렇게 대학생 생활에서 대외활동,
외국어 공부 가 접목이 되기 시작했다.
